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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거리와 비거리

성호준JTBC골프 2016-03-29

선인장이 자라는 건조한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JTBC 파운더스컵에서 선수들의 샷거리가 평소보다 늘었다. 덥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비거리 보다는 런 증가 폭이 더 크다. [JTBC골프 DB]

골프에서 거리와 비거리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비거리(飛距離)의 한자 ‘비’는 난다는 뜻이다. 비거리는 전체 거리가 아니고 공의 체공 거리, 즉 날아간 거리다. 야구에서는 비거리 150m짜리 홈런이라고 쓸 수 있다. 굴러간 거리를 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프에서 거리는 체공(캐리) 거리와 굴러간 거리(런)의 합을 의미한다.

그래서 거리와 비거리는 구분해야 한다. 공을 멀리 치면 “비거리가 많이 났다”가 아니라 “거리가 많이 났다”고 해야 한다. 물론 비거리가 길면 전체 거리도 길다. “대충 비슷한 말인데 아무거나 써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몸으로 예를 들어볼 수 있다. 어깨 위치가 높은 사람이 키도 크다. 그러나 대충 비례한다고 해서, 키가 크다를 어깨가 높다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어깨 높이는 낮아도 머리가 커서 키가 큰 경우도 있고 반대의 예도 있다. 8등신도 있고 머리가 훨씬 큰 사람도 있다.

골프장에서 흔히 하는 농담인 ‘시동 끄고 가는 거리(런)’는 편차가 크다. 페어웨이의 단단한 정도, 경사, 풀의 길이, 공의 낙하각도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달라진다. 떨어진 자리에 바로 멈추는 경우도 있고 100야드를 굴러 가는 경우도 있다.

-온도와 거리

김세영이 우승한 LPGA 투어 JTBC 파운더스컵이 벌어진 애리조나주 피닉스는 소노란 사막에 있다. 사막은 일교차가 크다. 오전 티오프를 하는 선수들은 쌀쌀해서 점퍼를 입는데 낮에는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덥다. "온도 차 때문에 아침과 낮의 비거리 차도 20야드 이상 된다"고 선수들은 말한다.

여기서도 비거리와 거리가 다르다.

날이 더우면 비거리도 늘어난다. 대기의 공기 분자는 기온이 높으면 운동 에너지가 높고, 밀도도 낮다. 저항이 줄어 공은 더 날아간다. 또 추울 때 보다 더울 때 클럽 페이스와 공이 충돌할 때 생기는 에너지 손실이 적다.

그러나 온도가 높을 경우 공을 띄우는 양력은 줄어든다. 공의 탄도가 높지 않은 골퍼는 날이 더우면 공을 충분히 띄우지 못하며 적어진 저항에도 불구하고 비거리는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

마크 스미스가 쓴 『골프의 과학』의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공을 높이 띄우지 못하는 경우(발사각 9도) 기온 영상 5도와 38도에서 ‘비거리’ 차이는 5m 늘어나는데 그쳤다. 높이 띄우는 경우(발사각 13도) 같은 온도 차이에서 비거리가 12m가 늘어난다.

JTBC 파운더스컵이 열린 사막은 건조하기 때문에 날이 더우면 페어웨이가 마르고 매우 딱딱해지기 때문에 런이 늘어난다.

탄도가 낮은 선수들은 공의 낙하 각도도 완만하기 때문에 런이 더 난다. 비거리는 별로 늘어나지 않지만 런이 많아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다.

-위도와 거리
동남아를 무대로 하는 아시안 투어에서 뛰는 선수가 유러피언 투어로 가서 스코틀랜드 등에서 경기하면 비거리가 확 줄어든다. 기온이 내려가서만은 아니다. 위도가 올라갈수록 골프공의 비거리가 줄어든다.

지구는 완전 구체가 아니다. 회전하기 때문에 원심력으로 가운데 쪽이 불룩 튀어나와 있다. 『골프의 과학』에 의하면 지구 중심에서의 거리는 극지방보다 적도가 21km 멀다. 그만큼 중력이 약하다.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수면에서 1580m 위에 있는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 필드가 홈런 공장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을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적도에서 공을 치는 선수들은 비거리가 더 난다. 대신 동남아는 비가 많이 와 땅이 젖은 경우가 많아 런은 적다.

-비와 비거리
일반적으로 골퍼들은 비가 오거나 습기가 높은 곳에서 비거리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습기 때문에 연못을 넘기는 샷을 할 때는 더 멀리 나가는 클럽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비는 그 자체로 공의 비거리를 줄이지는 못한다. 그러나 땅을 적시면서 런을 줄여 샷거리는 줄인다. [골프파일]

그러나 습도는 비거리를 줄이지 않는다. 습한 날 오히려 비거리는 더 늘어난다. 물 분자는 대기의 주성분인 질소나 산소 분자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습도가 높으면 오히려 저항이 낮다.

비도 마찬가지다. 비 그 자체는 골프공의 체공 거리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초속 70m로 날아가는 45.9g의 골프공에 빗방울이 정면충돌하면서 생기는 저항은 거의 의미 없는 수치라고 과학자들은 얘기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비는 거리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비옷을 입으면 몸의 움직임이 둔화되어 스윙스피드가 줄어들 수 있다. 또 비가 올 때는 바람이 불 가능성이 크다. 맞바람이 불면 거리가 줄어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르는 거리다. 지표면에 물이 고이면 런이 줄어든다.

비가 비거리는 줄이지 못하더라도 거리는 확 줄일 수 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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